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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IT빙하기를 살아 남을 용기 - 김국현
2009.11.16 / AM 09:33

[지디넷코리아]한국 IT의 부조리. 그 원인은 의외로 깊은 곳,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관성에 있었다.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하드웨어와 SI 중심의 IT 트렌드로 이어진다. 대기업과 그 계열에 줄 선 IT 서비스만이 서바이벌 가능한 대기업 편중화 현상도 한국 경제의 축도 그대로다. 중소 소프트웨어 하우스는 화석이 되어 버렸고, 벤처 성공 스토리는 10년 전의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이 빙하기를 타개할 근본적 변화란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 것이 해소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모되는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의 대한민국을 견인해 왔지만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성장 패러다임을 과감히 버리는 일에서 시작한다. 대마불사적 기업구조의 가부장주의와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의 모성애에 의한 성장 드라이브는 상부로부터의 정보가 신속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제조업이나 건설업에서는 어느 정도 기능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한국을 있게 한 것은 소프트웨어적이라기보다 하드웨어적 견인력이었다. 자유 방만한 창조성과 돌연변이적 혁신보다는 일사분란한 집중경영과 동양적 장인정신에 근거한 점진적 개선 그리고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하면 된다’의 집행력은 한국의 차별화 요소였고 이에 근거한 영역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국내 유수의 전자 기업들이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점은 그 차별화 요소를 무기 삼아 글로벌한 태풍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내시장에 온존하려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열정에 있다. 좋은 물건을 만들면 통할 것이라 우직하게 믿으며 재벌 전체의 응원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결단력은 타국의 산업체를 분명 능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결단력과 집행력은 이미 정해진 숙제를 고도화하는 카테고리에서는 성공적일지 모르나, 뜬금없이 솟아나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성장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벤처'의 영역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두철미한 정부주도의 전략집행이 아니라 계획경제에 의해 성장일로를 달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을 버리고, 자유로운 발상이 허락되고 장려되는 살만한 공간을 어떻게 빚어낼지, 또 이 땅에서 가능이나 한 일인지 걱정하는 일에 있다. 즉 독립적 개인으로 투명하게 살아 나가며, 스스로의 구체적 아이디어를 추상화할 용기를 보장 받는 일. 이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대등한 개인. 기회의 평등. 그러한 시도가 현실에서 신속하고 폭발적으로 일어난 사회랄까 대표적 커뮤니티는 바로 실리콘밸리였다. 2차 산업을 넘어선 정보산업의 혁신성이 어떻게 산업 국가의 체질을 극적으로 바꾸는지 드러낸 베스트 프랙티스였다.

이러한 환경적 문화적 토양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오죽 좋으련만, 이는 그 곳에 모인 구성원의 성숙도, 사회적 자본의 충실함 등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어찌 보면 원시 스프(primordial soup)의 기적에 가까운 일.

그러나 이 야생의 기적을 목격할 수 있었던 이상 이를 온실에서 재현이 가능할 터, 그 혜택을 입지 못한 후발 국가의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란 바로 이 재연의 환경을 갖추는데 있다. 밸리란 조성하기만 하면 되는 전제 조건이 아니라 자유로운 문화가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토양이 기능하고 있는 곳은 현재로서는 실리콘밸리와 스캔디나비안 스쿨의 전통이 살아 있는 유럽 정도일 것이다.

실리콘밸리나 스캔디나비안 문화에서 21세기를 대표할만한 창의적이고 기업과 프로젝트와 인재가 끊임없이 샘솟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크레이지한 아이디어로 실현되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믿고 밀어주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지식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어텐션 이코노미'와 평판 경제에 입각한 느슨하지만 낭만적인 시스템이야 말로 어떠한 국가 전략보다 더 애국적인 성과를 내버린 것이다.

만약 정부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은 계획주의가 부흥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상식을 잊지 않는 일이다. 귀중한 사회적 자원이 제조업과 건설업과 같은 선형적 성장 패러다임에 과도하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 그리고 동시에 미래가 요구하는 사회적 자본이 기능할 자유로운 플랫폼을 보장하는 일이다. 미래를 위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풍토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규제완화, 교육정책 등 일견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현정부도 지난 정부도 안타깝게 역방향 전진만 하고 있었다.

예컨대 정부 정책의 한계와 폐단은 오픈소스에 대한 몰이해에서도 드러난다. 지금도 여전히 오픈소스 진흥을 위한 여러 활동이 진행중이지만, 한국의 오픈소스 진흥책의 근본적 문제는 오픈소스를 이용하려는 자의 시선만 있고, 그 기저에 깔린 '그냥 재미로'의 생산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그 경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다.

나의 작은 코드 한 줄이 세계적 혁신을 일으킨다는 꿈. 이를 잃은 현장에서 오픈소스는 SI를 위한 염가의 원자재 공급원으로 인식되어,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왜곡된 인식만 낳는다. 그리고 더 절망적으로 사실상 오픈소스를 약취하여 포장만하고 자신들의 소프트웨어인양 파는 행태까지 만연하게 되고, 그러한 기업이 대표적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오픈소스는 사회적 이익 대신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사회적 폐해마저 야기할 수 있다는 기이한 실증사례를 세계에 남기고 만 셈이다. ‘제조 건설 입국’의 생리하에서는 오픈소스라는 창조적 운동마저 하도급 자재 수급의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나름의 전략적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일개 산업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주는 뻔하다. 전체적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실질적 경제 효율을 올리기 위해 장벽을 없애는 규제 개혁과 세이프티넷을 강화하여 개개인 깊은 곳에 아직 남아 있을 만용에 가까운 패기를 끌어내는 편이 낫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와 커리어를 걸고 부린 만용들이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지금보다 훨씬 많은 소프트웨어 하우스, 웹 기업이 생겨나고 이 분야의 고용은 배로 늘어날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웹 성장률은 배증하여 인터넷 상에서 한글은 현재 세계 7위에서 5위의 문화 컨텐츠로 등극할 것이다.
- 오픈소스란 유통이 촉진되어야 할 소비재이기에 앞서 개인의 생산을 장려하는 인센티브임이 이해되고,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거느리는' 오픈소스 성과가 우리 주위에서 생겨날 것이다. 벨기에(Drupal), 덴마크(Ruby On Rails, Umbraco) 등에서와 같이 세계인의 마음으로부터 서포트받는 진정한 오픈소스 운동이 생겨날 것이다.
- 대형 SI사 들의 계열사 물량 비중은 10% 선으로 줄어들 것이다. SI사 들은 종합건설사풍의 턴키 제공업자가 아닌 비트의 무역업, 즉 매시업을 지향하는 종합상사로 거듭난다.
- 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 전체로 현재보다 배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IBM 글로벌 서비스나 인도 타타 컨설턴시와 같은 글로벌 서비스업의 예를 볼 때 타당한 수준이다.
- 현실의 절망을 딛고 일어나 무언가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는 대안 공간으로서의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산업은 그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칫 이럴 리가 없잖아, 라고 이 백일몽들을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란 모두 우리가 앞으로 내리게 될 적잖은 개인적 사회적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이 사회와 경제가 과거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미래의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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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반장

2009/11/17 09:16 2009/11/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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