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는 재천(在天)이라.
궁함이 막다른데 가면 운이 트이고,
때가 되면 좋은 바람이 분다.
어찌 일시의 곤궁함을 가지고
평생을 단정할 수 있으랴."
한국인에게 '팔자(八字)'는 도형으로 표현하면 선(線)이다. '팔자가 피다'라고 하면 굽어진 팔자가 반듯하게 펴지는 것을 말하며 ‘팔자가 늘어지다’라면 오뉴월 쇠불알처럼 축 늘어진 모습이 꼭 '직선'으로 곧게 뻗은 품새다.
만약 '팔자가 기구하다'면 실타래처럼 엉켜진 곡절(曲折)이 많은 운수를 뜻한다. 기구한 팔자는 같은 일을 해도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고, 될 일은 되다가도 안 되고, 안 될 일은 될 듯하다 안 되는 기박(일이 뒤틀리고 복 없는 상황)한 삶을 뜻한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팔자에는 '매팔자'가 있다. 부모와 조상 덕인지 하릴없이 놀고먹어도 살림 걱정이 없는 정말 늘어진 팔자다.
말년 운이 트여 횡재할 팔자로는 이른바 '부원군 팔자'(대표적인 예로는 심청이의 부친 봉사 심학규)가 있다. 부원군이라면 딸 잘 둔 덕에 왕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비록 초년엔 거지발싸개 같은 신세였다가 말년에는 손끝 하나로 부와 귀를 조롱할 팔자인 것이다. 딸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꼭 노려볼 만한 팔자다.
사람 팔자는 도(道)가 높은 학자라고 해도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고봉 기대승에게 쓴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선생의 편지에는 태어난 지 한달도 못되어 어버이를 잃은 '기구한 팔자'를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고 "타고난 운은 어찌할 수 없다"며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린다면 그 얼마나 허망할까. 세상이 부러워 할 귀인(貴人)으로 태어났지만 팔자가 좋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경우도 많다.
철종의 대통계승자로 흥선군의 둘째아들 명복(命福 : 고종의 兒名)을 지명했던 조성하(趙成夏 1845∼1881)는 태중귀인(胎中貴人)*이었다.
매번 기름진 고기와 맛좋은 음식을 여섯 끼씩 먹었는데 배고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늘상 "나는 평생 동안 밥맛을 모른다"고 했다. 또한 마루에서 내려오면 가마나 수레를 타는 까닭에 1리 길도 제 발바닥에 흙을 묻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30세의 나이에 평양감사로 부임을 하자 그가 한 일이란 대동강에 놀이배를 띄우고 기생들과 풍악을 잡고 주색(酒色)에 흠뻑 취한 것이었다. 게다가 국고(國庫) 3만 궤미의 돈까지 모두 탕진하고도 문책 한번 받은 적이 없었다.
한번은 청나라 칙사를 마중 나가기 위해 안주로 가는 도중 술을 깨기 위해 멀쩡하게 밭 갈고 있는 민가의 소를 잡아 양즙을 대령케 한 떨떠름한 위세도 가관이었다. 허나 피와 살이 마르고 골수까지 말라 37세의 짧은 나이로 죽게 되었는데 굵게 먹고 짧게 살 팔자인지도 모른다.
흔히 일의 '성패는 시운(時運)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운이나 재수 탓으로 돌리는 경우다. 큰돈을 벌거나 실패를 한 경우 운이 좋다거나 나빴다거나 단순하게 단정한다. 그러나 타고난 분복(分福)은 어찌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렸다'는 천운대망론(天運待望論)을 가지고는 역시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은 더욱 안 된다.
사람의 '운(運)'은 '역(易)'을 나타낸다. '역'이란 끊임없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의 핵심적인 본질은 언제나 역에 있다. '운'은 변화의 추구에 있고, 그 변화를 보고 나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늠하는 수양이 필요할 뿐이다. '운과 역'을 받아들이고 창조해나가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나=자신'이다. 즉 사람의 팔자를 바꾸기 어렵다고 해도, 자신의 운을 바꾸는 것은 곧 ‘자신’이다. 부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 "빈부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재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기교 있는 사람은 부유하고 기교가 모자라는 사람은 가난하다."- 사마천司馬遷, [사기]
● "엘리트라고 뽐내고 자부하는 따위의 젊은이는 기업할 자격이 없네."- (주)태평양 창업주 서성환
●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전화 받을 생각을 버리게. 리어커 한 대 사서 직접 뛰어야지." - 해태그룹 창업주 박병규
부(富)란 아무나 이룩할 수 없지만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하다. 그래서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지만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 말린다고 하지 않던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라도 놓고 올라가 보자. 결과는 나중에 판단하면 된다. 병술년 벽두부터 부자가 되기 위해 뱃심 한번 부려볼 일이다.
* 귀인이라고 해도 어렸을 때 가난하거나, 혹은 말년에 근심을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조성하만은 태아부터 성장하여 관직생활을 하였을 때도 단 하루의 부귀가 최고조에 이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황현의 [매천야록])
Posted by 홍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