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양성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던 혁리는 뛰어난 지략으로 기적처럼 강력한 조나라 군대의 공격을 막아낸다. 혁리는 신분보다는 능력위주로 인재를 발탁하고, 전투에선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서며, 검소한 생활속에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격려한다. 누가봐도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소학에 이르길,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나에게 아첨하는 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권력있는 자일수록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 성 사람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혁리를 양성의 왕이 좋아할 리 없다.
혁리가 성 사람들의 신망을 얻을 수록, 왕의 혁리에 대한 의심은 커져 갔다. 마침 조나라 장군이 군대를 물리는 척 하는 계책을 쓰자, 침략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한 왕은 역모의 혐의를 씌워 혁리를 죽이려 한다. '토사구팽'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혁리를 따르던 사람들까지 모두 죽인다.
혁리는 공성에 맞서 수성하는 실력은 뛰어났으나 정치에선 초보였다. 아니 사람들을 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치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수성을 위한 군사전략만으로는 성안 백성을 온전히 구해내지 못했다. 높은 이상만으론,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는 절제심으로는 부족했다.
홀홀 단신인 그에겐 어차피 권력자의 조력이 필요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칭찬받을수록 자신을 더 낮추고, 왕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성이 불타지 않도록 거센 공격을 막는 준비만큼이나, 권력자들을 달래고 내부 분열을 단속하는 데 힘을 쏟았어야 했다.
그래서 리더는 철학과 이상이 있어야 하나, 성인군자여선 안 된다. 그 높은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여우같은 현실론자가 되어야 한다. 고매한 공자이기보다는 현실적인 마키아벨리가 돼야 한다. 정말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윗사람보다 더 인정받으려 해선 안 된다. 더 인정받는 것은 겉으로는 승리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 파멸의 끝을 보게 된다. 태양의 빛을 능가하지 않으면서도 늘 빛나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지혜를 배워라." 철학자 그라시안이 남긴 교훈이다. 정말 현실적인 지혜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홍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