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국 사이의 외교교섭 결과 서로 양해된 내용을 확인·기록하기 위해 정식계약 체결에 앞서
행하는 문서로 된 합의.
기업 사이에 합의해 작성하는 양해각서는 주로 정식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쌍방의 의견을 미리 조율하고 확인하는 상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역시 법적 구속력은 없고, 기업을 공시할 때도 자발적 의무 공시사항은 아니지만, 위반했을 경우에는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나름 개인블로거인데, 어느날인가 트위터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 블로그는 접근이 떨어지고 있다. SNS 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결국 등록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접근성의 문제가 이닐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맹목적이다. 직관적이다. 귀찮아한다. 보이는 것만 믿는다. 보통은 그렇다. 그럼 난 보통이 아닌가? 나도 보통 이다. common.
그럼 블로그도 트위터 처럼 만들면 되는것 아닌가?
트위터에서 글쓰면 블로그로 posting하는건 왜 안되는것일까? 되나?
아이폰을 사용하고 난 이후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블로그도 글 등록 어플을 만들면 되는것 아닌가? 단순한 생각인데도. 예전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생각이 문제인것일거다. 아마도.
피씨통신,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시절에도 글만 보고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나? 뭔가 꾸미고 다듬는 블로깅을 시작하며, 복잡해지다가, 블고그 사이트들이 성업을 했고. 그런데,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갔다. 글(Text)만 , 그것도 단문으로 등록하는 것이다. 이게 피씨통신 시절과 뭐가 다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대화를 필요로 하는게 아닌가 하고~
필요로 하는건 어떤 서비스가 아니라. 대화인 것이다. Communication.
접근이 쉽고, 사용이 엄청 편한 서비스가 필요한것 뿐이다. 전화기도 버튼만 11번 누르면 원하는 상대에게 내 말을 전해주지 않는가?
말만 커뮤니케이션이라 하지말고, 진정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을 해보자. 상대의 말을 들어보자!
잡념이 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늦게 깨닫는 것이 문제다. 잡념이 이는 것은 병이고 계속되지 않게 하는 것은 약이다.
- 도현의《조용한 행복》중에서 -
* 대체로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많이 갖고 많이 먹고 많이 얻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이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것이 오히려 재앙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늘 '너무 많다' 생각하고 덜어낼 줄도 알고 비울 줄도 알아야 잡념에 시달리지 않고 병에도 잘 걸리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꿈이 큰 사람들일수록 주위사람들에게 위세를 떨치지 않고 늘 겸손하게 대한다. 남을 높인다고 내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낮아지기는 커녕 나도 덩달아 높아지게 마련이다. 겸손함은 그 사람의 꿈의 크기다. 지금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크게 성장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주위사람들에게 겸손하라. - 김성회, ‘하이터치 리더’에서
교만은 인간관계의 뺄셈법칙이고 겸손은 인간관계의 덧셈법칙입니다. 재능이 칼이라면, 겸손은 그 재능을 보호하는 칼집입니다. 뛰어난 재능은 인물을 돋보이게 하지만 적을 만들기도 합니다. 겸손은 남이 시기해 진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미리 지뢰를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겸손이 사라지는 순간, 재능은 묻혀있는 지뢰를 폭발해 버립니다. ('하이터치 리더' 본문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는 세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인 것 같다. 의식주 외에 '누군가 탓할 사람' 말이다. 남을 탓하는 것도 하나의 성격이다.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탓하기에 바쁜 사람이 있다.
- 에이브러햄 J. 트위스키의《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네 성격 탓이야》중에서 -
* 어떤 일이 잘못될 때면 핑계부터 찾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잠시 편해지는 듯했다가도 내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고 내일이 되면 또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남을 탓하면서 잠깐 피해가는 하루보다는 내 잘못임을 말하면서 나를 키워나가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태산은 한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높은 산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해는 조그만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깊은 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군왕은 어떠한 백성도 물리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군왕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동서남북으로 끝이 없고, 백성들은 다른 조국이 있지 않습니다.
간축객서(諫逐客書 : 이사가 진시황에게 보낸 ‘외부 인사를 아내는 축객에 반대하는’ 상소)에서 인용했습니다. 폐쇄성에 경종을 울리는 글입니다. 이제는 개방성, 포용과 융합, 열린 생태계, 상생을 추구하는 개인과 조직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